선선한 가을바람이 살랑이는 쾌청한 9월이에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무더위도 거짓말같이 사그라들었죠. 지난 3년 동안 우리의 이야기로 열을 내던 써티랩도 가을바람과 함께 끝을 내려 합니다. 마음속 의아함과 아쉬움은 연구원들의 마지막 글을 읽어 내려가며 기분 좋은 바람에 실려보내길 바랄게요. 써티랩 연구원들이 전하는 마지막 인사, 써티랩의 끝을 축하해 주는 써티즈의 편지, 그동안 써티랩과 함께한 써티즈를 한 명 한 명 기록하며 힘차게 안녕! 인사를 보냅니다. 

요즘 저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글쓰기는 곧 싸움질'이라는 생각인데요. 먹도 주먹(?)이랄까요. 

써티랩이라는 글쓰기 공동체에 속해 있던 모든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함께 싸운다는 연대감은 저를 외롭게 두지 않았거든요. 같은 주제로, 다른 결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움에 동참해 주는 동료들은 나만의 싸움 방식을 가꾸도록 돕는 동시에, 다양한 싸움 방식을 살펴 참조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고마워요.

처음 뉴스레터에 글을 실어 보낼 당시에 저는 제 글쓰기 방식에 자기만족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어쭙잖고 허접하더군요. 그만큼 자랐나 봅니다. 

이젠 무얼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하기 위해 만난다거나, 마감에 쫓기며 독촉(?) 하지 않고 동료들과 지낼 수 있는 건, 마지막 써티랩 뉴스레터를 보내고 받는 보상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일지라도 아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저는 저만의 글을 쓸 겁니다. 싸움닭을 계속 자처할 생각입니다. 글과 말을 차곡차곡 쌓아 누군가가 이를 딛고 각자의 벽을 넘을 수 있기를 바라고, 저도 제 글과 말을 딛고 제 벽을 넘어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도 서로를 그렇게 독려하고 응원하면 좋겠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독자가 돼주어 감사하고요. 늘 안녕하세요!

써티랩을 시작한 지 벌써 2년 8개월이 지났네요. 이제 써티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 합니다. 써티랩의 문을 닫는 저만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제 삶을 더 충실히 살아 새로운 불만을 찾고, 또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3년 전 삶 속에서 만난 수많은 불만으로 써티랩을 시작했던 것처럼요.

수려하고 뾰족한 글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은 제 특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대단한 글을 쓰기보다는 그저 진심을 담아 제 일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죠. 캐리어 하나 들고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떠난 일, 아픈 가족을 돌본 일, 회사에서 번아웃을 겪은 일 등 나만의 고민이 아닌 우리의 고민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오직 제 일상만 글의 소재로 삼다 보니, 가끔 쓸 글이 없다는 건 제 삶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써티랩의 목적은 ‘누군가가 정의한 MZ세대가 아닌, 나 자신을 직접 이야기하자’는 것이었어요. 타인이 쥐고 있는 마이크를 가져와 우리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싶었죠. 그런데 써티랩을 1년 정도 쓰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결국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뺏어온 마이크를 다시 타인에게 건네야 하더라고요. 나의 일상은 모노드라마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써티랩은 그렇게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주었는지 생각해 봤어요. 저는 단순히 3분짜리 뉴스로 세대의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 지난 3년 동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통해 나의 일상을 보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쉽게 휩쓸리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주변을 돌아보는 작은 힘 말이죠.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정말 그럴까?’, ‘나는 어떤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셨다면 저는 이 문을 기쁘게 닫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내가 아닌 우리를 고민할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다, 또 어딘가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써티즈 안녕!

저에겐 든든한 글친구들이 있습니다. 맞아요. 써티랩이죠. 글을 쓰고 읽는 즐거움을 알고, 마감의 고통까지도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읽기와 쓰기에 진심인 이들은 또 얼마나 성실하고 부지런한 지 모릅니다. 궁금한 것은 질문하고 찾아봐야 속이 시원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에도 집중합니다.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모두 하나의 글감입니다. 관심 없거나 내 취향이 아닌 주제도 한 번쯤은 생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이참에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만들어 봅니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 아닌, 나의 해답을 만들어보는 시간이죠.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내 세상이 한참 좁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비버는 써티랩에서 ‘채집노트'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해 왔습니다. 첫 레터에서도 ‘오늘도 생각의 집을 짓기 위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열심히 자료를 수집한다.’고 제 소개를 했었죠. 그도 그럴 것이 제 글은 보고 듣고 읽고 마주한 모든 재료로 제 생각의 집을 짓는 행위거든요. 비버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야생의 비버는 강 주변에 나뭇가지, 나뭇가지와 비슷해 보이는 야구방망이, 빗자루, 심지어 슬리퍼나 패트병 등을 한데 쌓아 댐 형태의 집을 짓기로 유명한 동물이에요. 이 집의 영향력이 꽤 큽니다. 댐 형태의 집은 자연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기도 하거든요.

저 역시 써티랩을 통해 제 생각의 집을 튼튼하게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내가 아니라, 내가 말하는 내가 되고 싶었거든요. 2년 8개월동안 제 생각의 집은 정말 튼튼해졌습니다. 단순히 말 뿐인 생각이 아니라 직접 보고 읽고 듣고 마주한 것을 토대로 단단하게 쌓였습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대화하면서 제 삶의 줄기도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생태계도 조성되었고요.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비버가 만든 댐 형태의 집은 완성되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확장하고 보수 공사를 진행하죠. 그래서 끝없이 튼튼해지고 커집니다. 그래서 어떤 비버의 집은 SUV 차량이 지나가도 부서지지 않는대요. 통상의 장비로는 부술 수가 없어 다이너마이트를 써야만 하죠. 🧨

써티랩은 매 뉴스레터에 크고 작은 질문들을 담았습니다. 1년 차에는 묘약이라는 이름으로, 2년 차에는 써티공방이라는 공론장으로, 3년 차에는 어떤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인생은 질문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해답과 같은 힘을 지니죠. 더기, 베르, 아콧 저를 포함한 우리 써티랩 멤버들은 뉴스레터가 아니어도 관심어린 눈망울을 하고선 질문을 하고 다닐 것 같습니다.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

안녕하세요 써티즈. 이렇게 인삿말을 적는 게 오늘로 마지막이라니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처음 써티랩을 시작했던 겨울을 지나 마지막 레터를 보내는 초가을을 맞이하는 동안 벌써 계절을 세 바퀴나 돌았네요. 한 달에 한 번 적어내려간 고민의 흔적들이 비라는 뜻의 이름처럼 단비 같은 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글이 어딘가에선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기를. 또 어딘가에선 줄기를 올리고 열매를 맺었기를 바라봅니다. 혹은 그저 마음을 시원하게는 빗줄기가 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레터를 적어보내는 2년 8개월 동안 취미를 담아내는, 취미처럼 가볍게 시작했던 글을 통해 제 삶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저 흘려보냈던 생각들과 감상들을 그러모아 한 자 한 자 적어내면서 사고의 윤곽을 덧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적어내렸던 글들은 어쩌면 밑그림을 그린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모양으로 그려낸 그림을 각자 앞으로 어떤 색으로 물들여갈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보게 될 다채로운 풍경을 기쁘게 나눌 수 있길 바라봅니다.

매 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창구가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한 편으로는 마감과 다음 주제의 압박 없이 자유롭게 써티랩 식구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 기쁘기도 합니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지만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나리라 믿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참여해주셨던 써티즈 분들도 조용히 지켜봐주셨던 써티즈 분들도 어디선가 또 만나 기쁘게 인사나눌 수 있길 바라요.

🧚‍♀️라하

청춘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청년이라고 하기엔 현실적인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서른에 접어든 우리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애매한 나이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되고 싶지만 너무 커버렸고, 거대한 무언가를 책임져야 되는 불안한 어른이 되기에는 아직은 가벼운 굉장히 독특한 시기. 이 시기를 머무르고 있는 삼십대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렇게 멋진 일에 동참한 사람들은 누굴까?’라는 기대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엮어지고, 나라면 어떤 주제를 썼을까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또한 각자의 이야기에 각자의 삶의 방식이 드러나있어 삶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도 닥쳐진 일을 닥치고 해야 하는 일상에 파묻힌 생각을 꺼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겨우 시간을 내야 했던 우리의 생각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 환기시켜준 서티랩 친구들에게 애정과 격려를 보냅니다. 불완전한 서른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열정을 보여주시고 3년간 성실하게 여러분의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나올 서티랩 시즌2도 기대할게요!

🦷햄치

청년의 정의는 참 다양하다. 각 정책, 또는 지자체의 기준에 따라 만 19세부터 만 39세, 또는 45세까지 포괄하기도 하며, 사전상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지만, 금세 어리숙한 사회초년생의 모습으로 분하기도 한다.

내가 만난 몇몇 사람들은 각자가 정의내린 ‘바람직한 청년’을 내게 투영하고 요구했다. 온전히 타인의 입으로 그려지는 ‘나' 만큼 낯선 것은 없어서였을까, ‘청년' 옆에 따라붙는 말들이 참 마뜩잖았다. 아마 써티랩의 태동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되었을 테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해보자'는 써티랩의 포부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묘약’ 시리즈에서 시작해 서로의 말을 나눠 듣는 ‘어떤 친구’, ‘어떤 만남’으로 이어졌다. 써티랩의 시작을 곁에서 지켜보며 기고든, 모임이든 참여해 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던 것과 달리 2년이 넘어가는 연재 기간 조용한 독자로 남아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았는데, 축전을 부탁받아서 다행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조용하기만 했던 독자1도 써티랩 덕분에 그의 동네에서 자기 말하기를, 다른 청년의 목소리 찾기를 꾸준히 시도해 왔다고 감사를 전하고 싶다. 써티랩의 묘약들이, 다정한 만남들이, 느린 산책들이 그 물꼬를 틔우는 떠밀림이 되어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