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여정은 학교 앞 도서관에서 시작했습니다. 여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어린이자료실에 들어가 잠깐 그림책도 탐독해보고, 마침 반납할 책을 가져다두러 갔다가 신간도 훑어보고, 학창시절 시험기간이면 으레 그랬던 것처럼 도서관 마당 등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수다꽃을 피웠습니다. 알고보면 두부는 강서도서관이 첫 방문이라던가 사는 곳이 정말 내 동네가 되는 계기라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선선하던 그늘도 후덥지근해질 즈음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물론 샛길로 새는 게 제일 재미진지라 예정에 없던 모교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외부인 출입을 막기 시작한 후로는 들어가 볼일이 없었기에 저도 두부도 졸업하고 처음으로 다시 가 본 운동장은 기억하는 것보다 작아져 있었습니다. 없던 강당 건물이 들어서고, 개수대가 위치를 옮기고, 골대를 빗겨간 공이 언덕을 따라 굴러가지 않게 그물망이 드리워지면서 숨가쁘게 뛰어다녔던 그 공간이 어쩜 그리 아담해보이는지. 슬프게도 그 때보다 키는 자라지 않았는데 그 동안 세상을 열심히 돌아다닌 덕이려니 생각해봅니다.

손에 하나씩 하드를 쥐고 무인상점의 에어컨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다가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원래는 골목 가득 들어찬 상가를 지나 큰 길 가의 버스를 타고 가려던 길을 직접 운전해 순식간에 스쳐지나갑니다. 왕복 2차선이 될까말까한 좁은 길에 보행자통로선이 그려져 있어 사람도 차도 서로 조심해야 하는 그 길을 겨우 빠져나와 두부가 타고 통학하던 버스와 나란히 달리다가 정류장에 멈춰 선 사이 앞지르기도 합니다. 어릴 땐 멀게만 느껴졌던 그 길이 새삼 가깝게 느껴져 어른들 입장에선 다닐만한 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잠깐 납득했다가, 직접 두부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중학교를 가보니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싶기도 합니다. 걸어갈 수 있는 곳을 두고 버스를 타게 하다니 잔인하다며 주인모를 원망도 해봅니다.

그렇게 한 바퀴 동네를 돌고나니 분명 대로를 끼고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서로의 집인데도 다시 이 동네로 이사오고선 대부분 먼 동네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차를 돌려 나오는 그 잠깐도 길이 낯설어 내비를 찍었다는 웃픈 사실. 카페에서 목을 축이며 동네를 누빈 소감에서 시작해서 앞으로의 계획까지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기꺼이 길을 건너야지 다짐해봅니다. 새로운 길은 지도 없이 못가는, 다시 가는 길은 꼭 지난 번의 길을 택하고 마는 안전지향의 쫄보이지만 때로는 낯선 길을 걸어도 보자고요. 그 너머에 있을 만남을 기대하면서요.

예부터 우리는 산과 강을 기준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마을은 고유한 문화와 역사가 있었고, 가족과 가까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사람들에게 높고 험준한 산을 넘는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산 너머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알 수가 없었고, 야생 동물이라도 나온다면 낭패였죠. 강 또한 자연적인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나 다리가 필요했고 이마저도 물난리라도 나면 건너기가 썩 어려웠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마을과 마을의 교류를 막았던 것은 바로 산과 강이었습니다. 이러한 지형은 마을 간의 물리적 장벽이 되어서, 각 마을이 독립적으로 발전하거나, 서로 다른 문화나 관습을 공고히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써티랩은 지난 8월 10일, 아콧과 두부의 추억이 가득한 동네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걸어 다니며 추억을 회상했던 곳은 등촌동과 목동 그사이 그리고 강서구와 양천구를 경계하는 곳이었습니다. 왕복 4차선의 좁은 길을 사이로 행정 구역이 바뀌는 지역이었죠.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강서구 등촌동의 아콧과 양천구 목동의 두부가 만나서 친구가 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 건너 마을 사람과 15년 지기가 될 수 있다니?! 제일 기억에 남고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나요?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있나요? 저의 경우를 돌아보면, 제 친구들은 대부분 우연의 산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합창단에서 만난 얼굴 뽀얀 친구는 저와 대화를 해본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친구가 되었습니다. 또, 대학 신입생 때 저를 못살게 괴롭히던 한 친구를 뒷담화로 시작해 밤새 김.피.탕(김치피자탕수육)을 노나(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유일하게 남은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그뿐일까요? 제가 써티랩에 합류하게 된 건 무지 전)소장이 제 인스타 피드에 댓글을 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모한 용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것 사이에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지나칩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가 실수였는지 모르게 내버린 용기는 작은 기회가 되어서 우연을 가장한 우정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우연을 가장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가 되었다는 건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우연이라고 말할 수가 없죠. 누군가는 용기를 낸 겁니다. 그 용기의 시작은 아마 호기심이었거나 애정이었거나 사랑이었거나 관심이었을 테니까요.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의 책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마주한 문장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우리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지나칩니다. 친구가 되는 일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일과 비슷해 보여요. 우리에겐 각각 분명한 장벽이 있고, 서로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시간이니까요. 다만, 저기 길 건너 사람에게 먼저 손 내미는, 그리고 ‘안녕하세요’ 먼저 안부 건네는 무모한 용기를 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주적 인연을 만나게 될지 몰라요. 15년 지기 아콧과 두부처럼 말이죠.

우린 어떻게 만났나요? 그리고 우린 또 어떻게 만날까요? 그때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