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성북구는 서쪽으로는 산(山)이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중앙부에는 고려대학교가, 동쪽으로는 요즘 한창 재개발 이슈로 뉴스에 오르내리는 장위동이 놓여있습니다. 제 경우엔 서쪽 산에 평화로이 놓인 국민대학교와 중앙부의 고려대학교, 절친이 살고 있는 동쪽의 장위동을 가본 적이 있으니, 성북구 지역을 고르게 방문해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듣자 하니 성북구 성북동은 문인과 문학의 동네라고 해요. 시인 한용운은 성북동에서 삶을 마감했고, 비둘기 입장에서 쓴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도 기억될만하죠. 시인 김광섭이 당시 성북동 채석장 근처에 살았었고 이를 시로 남겼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북동은 기록물인 텍스트(text)와 시대상의 콘텍스트(context)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동네인 것 같습니다. 

어떤 지역이 캐릭터(character)를 갖기 위해선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요구됩니다. 발생한 이벤트를 잘 포착하여 글로 남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한 지역을 기억하는 방식이자 역사가 탄생하는 지점이죠. 그런 면에서 성북동은 성공적으로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북근현대문학관>은 성북동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기 적합하고도 중요한 공간이죠.

또 새로운 움직임도 포착됩니다. 최근에 블랭핑크의 리사, 배우 유해진, 래퍼 빈지노 등이 성북동의 집을 샀다는 것이지요. 북한산 자락과 연계되어 보안이 좋고 유동인구가 적어 유명인들이 선호하는 것이겠지만, 문화예술인들이 모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훗날, 시인 한용운, 김광섭을 언급하며 성북동의 캐릭터를 형성한 것처럼, 리사와 유해진, 빈지노도 그 캐릭터의 맥을 이어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써티랩은 지난번의 대치동(도시산책) 탐방에 이어 성북동(어떤만남)을 탐구하면서, 땅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삶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의 재미와 가치를 느낍니다. 이번 호에서 제공되는 텍스트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재미와 가치가 적절히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성북근현대문학관>을 방문하여 자기만의 콘텍스트를 마련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써티즈는 가장 친한 동네 친구가 있나요? 오늘은 1960년대 서울 성북동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시인 김광섭과 화가 김환기의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성북동 이웃사촌이자 같은 예술인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하고 지지하며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1964년 김환기가 작품 활동을 위해 뉴욕으로 떠난 후에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나눴죠. 하지만 1970년 어느 날 김환기는 서울의 친구 김광섭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됩니다. 슬픔에 빠진 김환기는 머나먼 타국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며 붓을 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걸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입니다.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한 구절을 그림의 제목으로 붙인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시인과 화가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서로의 불안함을 위로해 주었던 소중한 존재였을 겁니다. 그리고 성북동은 서로를 기억하게 해주는 연결점이 되었겠죠. 저는 이들을 보며 서로를 내 삶의 일부로 기록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선망의 마음을 품기도 했습니다. 바로 제 친구 아림을 떠올리면서요.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도 안 해본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다 커서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게 어색하지만 같이 사는 맛이 있다. 퇴근 후엔 서로에게 오늘 무엇을 먹었냐고, 일할 때 힘든 점은 없었냐고, 일 끝내고 집 앞 슈퍼로 오겠냐고 소소한 질문을 나누는 것이 묘하게 일상의 안전함을 느끼게 해준다.’ 작년 여름, 목포에서 동료 아림과 동고동락했던 때에 썼던 제 일기입니다. 아림은 제가 목포에서 지역 사람들을 취재하는 일을 했을 때 만난 동료인데요. 저희는 한 달간의 목포살이를 끝내고 또다시 인연이 닿아, 서촌에서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일이 끝난 뒤엔 둘은 동료가 아닌 친구가 되어 삶의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이사를 돕는 사이가 되었죠. 사는 곳은 다르지만 여전히 ‘같이 사는 맛’을 느끼며 일상의 안전함을 누리면서요. 특별할 것 없는 동료 사이에서 친구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 같이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듯 합니다. 목포와 서촌에서 만났던 이웃들, 또 성북동에서 만난 어떤 친구들까지요. 덕분에 저에게 이 도시들은 친구들이 있어 마음 편히 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곳이 되었죠.

30대와 친구라는 단어는 어딘가 어색한 조합인 듯합니다. 서른이 넘으면 친구와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결혼과 가정으로 인해 시간을 함께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결혼이 늦춰지는 요즘의 우리에겐 아니, 누구나 곁이 필요한 우리에겐 늘 친구가 소중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족이나 연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지지하며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친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겠죠. 김광섭과 김환기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요. 써티즈는 어떤 동네에서 어떤 친구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나요?

저에게 성북은 출근하는 날이 아니면 갈 일 없는 동네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멀기도 멀고 제가 싫어하는 언덕이 굽이굽이 많은 동네거든요. 기껏 숨차게 올랐던 언덕을 도로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사무실 가는 길을 어쩜 그리도 싫어했는지. 여유로운 날이면 최대한 언덕이 없는 방향으로 크게 돌아가거나 중간에 한참 멈춰서서 고양이를 쓰다듬고는 했습니다. 아침 나절엔 출근하기 바빠서 저녁 나절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제 지도의 성북은 안암역 사거리 그 언저리만 환합니다. 고려대역만 넘어가도 아직 가보지 않은 미답보의 영역이 가득 남아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의 어떤 만남을 통해 알았지만 몰랐던 동네의 면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혜화 다음 역이니 마냥 종로구인줄 알았던 한성대입구역도 알고보면 성북구였다던가. 굽이굽이 그 산자락 따라 문학과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발견했습니다. 일제를 피해 멀리 산골짜기로 밀려난 문인들이 자리 잡았던 자리에 시와 이야기와 노래가 꽃피었고. 이제 그들이 내어준 자리에 깃들인 이들은 옛 사람들의 말과 이야기를 노랫말 삼아 삶을 연주합니다. 함께 둘러 본 성북근현대문학관과 리홀 뮤직갤러리를 통해 그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만난 성북근현대문학관 앞에는 아름드리 나무 아래 잠시 쉬어갈만한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그 너머는 내내 성곽길이 이어져 한 숨 돌리고 갈 역참이 필요해 보입니다. 더기가 준비해 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온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그 자리를 마당삼아 본격적인 일정 시작 전에 잠깐 쉬어봅니다. 오늘의 일정을 고민하고 깜짝 퀘스트로 일회용 카메라를 가져온 아림님과 국문학도 짬빠를 살려 문학관 일일 도슨트를 맡은 준돌님, 부동산을 검색하다 대치동 편으로 유입되셨다는 상준님까지. 신선한 조합의 다섯 명이 함께 교과서 속에서 보았던 문인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도 보고 말 한 마디 없이 나란히 앉아 그저 음악에만 집중해보기도 했습니다. 짧은 거리였지만 성북동 언덕을 오르며 이 곳에 처음 자리잡았을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마지막엔 에어컨이 빵빵한 버스를 타고 내려와 호스트인 아림님이 쏘는 아케미의 젤라또로 열기를 식히며 오순도순 각자가 목격한 성북을 이야기 나눴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간 나폴레옹 제과점, 그 맞은편에 자리한 서울연극창작센터까지. 과거인듯 현재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그 곳들에서 미래의 냄새를 맡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쌓이고 노래가 흘러 한 시대가 지나가겠죠. 그 끝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성북을 기억하게 될 지 기대됩니다. 곰곰히 들여다보니 매일 오가던 관성이 남아있는 동안 장위동의 오동숲속도서관도 다녀오고 국립산림과학원(성북인줄 알았지만 동대문구인 게 함정)도 다녀왔더군요. 골짜기마다 산기슭마다 들어 찬 생의 모습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가까이 보아야 보이는 게 있는 것처럼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인가 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나의 동네는 어떤 곳인가요?

한국의 근현대 예술의 근원지이자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터를 잡고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났던 성북동. 그때 그 시절의 흔적과 이야기들을 찾아 써티랩 연구원들, 어떤 만남 친구들과 성북동을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북동 어떤 만남을 준비하던 중 발견한 이야기가 친구이자 동료인 더기와 주고받았던 마음이 그때 그 시절 문화예술인들의 교류 방식과 꽤나 닮아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소설가 이태준과 화가 김용준은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친구 사이였습니다. 지금의 ‘수연산방’은 성북동 문학인들의 사랑방이자 이태준의 집이었으며, 1939년 2월 창간된 <문장(文章)>지가 탄생한 공간이기도 하죠. <문장>지의 주간을 맡은 소설가 이태준과 표지 그림을 일임한 화가 김용준은 성북동에 살며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활발한 교류를 하던 사이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니 자연스레 더기와 제가 떠오르는 듯 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목포에서 같이 일하는 사이로 만나 한 달 동안 룸메이트로 동고동락하며 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든든한 동료이자, 틈만 나면 음악 투어와 LP 디깅을 하며 깔깔거리던 친구 더기와의 일상이 그려졌습니다. 또 둘은 서로의 걱정 거리와 고민들을 스스럼없이 나누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때는 편지와 선물을 주고받는 특별한 사이이기도 하죠. 서로의 취향을 닮아가고, 배워가는 재미로 사는 우리처럼 써티랩 친구들에게도 이와 같은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성북동 근현대문학관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한 준돌이 알려주는 문학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성북동의 문화예술인들의 작품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1930년대 만들어진 역사가 깊은 다양한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리홀 뮤직 갤러리에서의 시간도 인상 깊었고요. 마지막으로, 저의 단골 가게인 비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자연의 맛이 가득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다 헤어졌습니다.

항상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애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 동네를 소개하는 경험은 또 새로웠습니다. 평소 집들이를 할 때 친구들에게 방명록을 적어달라는 요청을 써티랩 친구들에게도 조심스레 부탁을 했는데요. 다들 신기해하며 스스럼없이 마음을 남겨 주어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덕분에 제가 사는 동네를 더, 그리고 함께해 준 이들을 더 많이 애정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