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사랑해 마지않는 호빗 시리즈가 재개봉 한다는 소식에 첫 날 부터 극장을 찾았다. 기억 속 빌보와 드워프들의 모험을 상기하며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 앉은 나는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다.
평온했던 일상을 불현듯 깨부수고 들어온 불청객(간달프와 드워프들)의 초대에 겁많은 빌보는 선뜻 발길을 떼지 못한다. 그가 누리던 삶이 안락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문 밖의 삶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용)의 광대함과 포악함을 들먹이며 호빗 겁주기에 맛들린 드워프들은 결국 그를 기절시키기에 성공한다. 잠시 정신을 차린 빌보에게 간달프는 그의 어린 시절을 가득 채웠던 호기심을 일깨우며 언제부터 어머니가 남긴 그릇이 깨질까 벌벌 떠는 어른이 되어버린거냐 묻는다. 아니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언제부터 내 불안한 자아가 깨질까 벌벌 떠는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우리는 누구나 첫 시작을 앞두고 두려워한다. 늘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하는 설렘보다 첫 발을 내딛는 두려움이 컸기에 쉽게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나만의 성을 쌓곤 했다. 실패할 일 없는 안전한 시도들을 반복하며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더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내 자신을 제한해왔던 건 어쩌면 내 자신이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어린 날의 나는 넓은 세상을 돌아보고 싶었다. 가보지 못한 곳을 눈에 담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을 통해 한 뼘 더 큰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작은 손이나마 내밀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토록 궁금해하고 꿈꿔 왔던 세상은 책이나 지도 속이 아닌 저 문 밖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 세상으로 뛰어드는 길은 늘 막막하고 두렵기만 했다.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넘어지면 어떡해? 강도를 만나게 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곳의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줄까?
나와 마찬가지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하는 빌보에게 간달프는 이렇게 말한다. 한 번 떠나면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장담컨대 돌아온다면 그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홀로 잠에서 깨 문을 박차고 나간 빌보는 이윽고 14번째 원정대원이 된다. 그렇게 낯설고 두렵기만 했던 미지의 여정은 일단 한 발을 떼고 보면 새로운 것으로 가득차 아름답고 함께 걷는 이가 있어 즐거운 소풍길이 된다. 때로는 순탄한 길을 걸으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난관에 가로막혀 끙끙 앓기도 하면서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걱정했던 것 만큼 이 여행이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집돌이 였던 빌보는 여행길에 올랐기에 그의 빛나는 재치를 발휘할 수 있었고 혹여나 깨질까 벌벌 떨던 접시들보다 훨씬 값진 보물✨을 얻어 돌아온다. 그렇게 그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고 그 누구보다 멀리 가 본 호빗의 영예를 안고 우리가 익히 아는 반지의 제왕 첫 씬을 장식하게 된다.
호빗은 2022년의 첫 달, 30대의 시작점에 선 나에게 응원가 같은 영화였다. 어디로든 떠난다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가는 이들이 네 곁에 있다고.
선택의 기로 앞에서, 또는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서 두려워하고 있다면 기억하자.
우리는 누구나 홀로 길을 떠나지만 누구도 홀로 걷고 있지 않다. |